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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에덴동산을 찾아

Sam1212 2010. 5. 5. 09:43

 

 

한강의 에덴동산을 찾아가는 길(강동의 한강변길)

한강변길 중에서 가장 자연 환경이 잘 보존되어있는 구간은 강동지역이다. 한강변의 넓은 둔치지역들이 많은 부분 시민들의 휴식 공간 제공이란 이름으로 인공적인 녹지조성이나 구조물들이 들어가 있다. 그중에서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초지나 습지가 많이 남아있는 곳이 강동지역이다.

 

 

오늘은 성내천 입구에서 출발하여 한강변을 따라 강동구의 생태공원을 찾아가보기로 하였다. 오늘은 어린이날 이다. 날씨도 화창하고 올림픽대로를 따라 철쭉꽃도 만발하여 한강변은 나들이 나온 인파들로 붐빈다. 올림픽 대교 아래를 지나니 한 무리의 자전거 동호회원들이 옆을 스치고 질주해 간다.

 

 

 

 

 

 

강동으로 가는 걷기코스는 올림픽대로아래 새로 만든 걷기전용 도로 보다 강변에 연해있는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이 훨씬 즐겁다. 우선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차량의 소음도 덜하고 자전거 도로와 떨어져 있어 안전하다. 강물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귀밑을 스치고 지나가는 시원한 강바람이 강변 걷기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천호대교 밑을 통과하자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강변을 덮고 있고 마이크 소리도 요란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강변에 레일바이크 인라인스케이트장 운동장등 많은 놀이시설이 들어서있다. '광나루한강공원'이란 표시판이 붙어있다.

 

 

한강변이나 한강의 지천을 걸을 때마다 매번 변화를 실감한다. 담당 지자체 별로 시민의 휴식 공간 제공이란 명분으로 새로운 시설들이 들어서고 있다. 갈대밭이었던 곳이 다음해 찾아가보면 축구장으로 바뀌었고 축구장이었던 곳은 널따란 잔디공원으로 변해있다. 모두 많은 예산을 들여서 눈에 보기는 좋은 시설들이나 저 시설물들이 언제 또 헐리고 더 화려한 시설들로 바뀌게 될지 걱정이들 때도 있다.

 

강둑 넘어 시내의 땅값은 평당 수 천 만원인데 강변에 임자 없는 땅 갈대밭 밀어내고 그까짓 잔디 깔고 화강암 까는 비용쯤 이야 지자체장들에게는 생색내기 좋은 사업 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강변 중에서 개발이란 이름의 손길이 덜 미친 상태로 많이 남아있는 둔치가 강동지역이다.

 

 

 

놀이공원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기다리던 '암사동 생태관광보존지역'이 나온다. 여름철에 이곳에 와보면 한 길이 넘는 푸른 갈대숲과 갈대를 휘감고 있는 넝쿨식물(환삼덩쿨)만 보여서 조금 단조로워 보인다.

 

 오늘은 누렇게 말라죽은 갈대사이로 어린 새 갈대 순들이 삐죽삐죽 올라오고 있다. 그래도 강가에 줄지어 선 버드나무들은 연두 빛으로 바뀌었고 강바람에 잔가지들이 흔들리며 강물위에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곳 암사지구 생태공원을 걷다보면 발밑의 흙길이 잘 다져있어 마치 고무 판위를 걷는 느낌이드는 구간을 만난다. 이곳을 걸을 때마다 신발을 벗고 맨발 걷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요즘 시골에 가도 이곳처럼 부드러운 찰흙으로 잘 다져진 300미터가 넘는 길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습지에서 가장 생명력이 강한 식물은 갈대이고 육지에선 아카시아이다. 이는 군 생활을 비무장지대에서 하면서 식생의 인위적 통제가 없는 버려진 땅의 생태를 관찰하며 얻은 경험지식이다.

 

 

 

이곳 갈대밭에 탐스럽게 피어난 꽃들이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운영이다. 이곳 암사동의 갈대습지에 어떤 경로로 자운영이 들어와 꽃을 피우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자운영은 봄에 피는 꽃으로 논에 심어 비료 역할을 하는 식물이다. 요즘은 시골에 가도 자운영이 만발한 논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87년에 일본에서 걷기행사에 참가했을 적에 논들이 온통 자운영 꽃으로 뒤덮인 들판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부드러운 흙길이 끝나고 나니 갈대밭 속으로 잘 다듬어진 산책로가 구불구불 이어져 나온다. 산책로를 따라 원추리 찔레 붓꽃들이 심겨져있다. 안내판의 설명엔 이곳의 총면적이 126,844평방미터로 꽤 넓은 지역이다. 이 곳 만큼은 앞으로도 영원히 개발이란 이름의 파괴와 회손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생태공원의 산책로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는데 암사대교의 공사현장과 마주쳤다. 한마디로 공사판이다. 파헤쳐진 강바닥엔 넓게 포장된 공사 현장이 나오고 커다란 공사 구조물들과 아직 상판이 올라가지 않은 교각들이 개선문 형상을 하고 하늘을 향해 우뚝 우뚝 서있다.

 

 

 

 

 

도시는 자꾸 팽창하고 차량은 늘어나고 빠른 통행을 위해선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건설도 필요하다. 우리는 머지않아 한강위에 또 하나의 다리를 더하게 된다.도시의 외부 팽창을 저지하기위해 도시 외곽에 그린벨트를 만들었다. 도시민들에게 녹색의 휴식공간을 제공해주던 그린벨트가 개발의 미명아래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다.

 

 한강변의 널따란 둔치도 하천의 그린벨트이다. 생태공원이란 이름으로 조금 남아있는 갈대밭들이 더 좋은 휴식시설의 제공이란 이름으로 파헤쳐져 잔디밭이나 포장된 스케이트장으로 변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한강의 둔치가 끝나는 지점에 앞을 가로막는 언덕위에 정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하남지역에서 올림픽대로를 타고 서울에 들어올 때 많이 보아왔던 바로 그 정자이다.

 

이곳 올림픽대로 밑으로 최근에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새로 개설되었다. 이제 이 산책로를 따라서 미사리까지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강변에서 바라다보인 정자의 이름은 구암정(龜巖亭)이었다. 설명에 따르면 바윗절(巖寺址)이라 불렀던 이곳은 백제시대 최초의 불교사원이 세워진 곳 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광주군에 속하며 '구암서원'이 있던 곳으로 서원의 이름을 변형하여 지은 정자라 한다.

 

 

정자에 올라보니 동서로 탁 트인 전망이 제법 호쾌하다. 원래 의 지형은 한강변에 우뚝 선 봉우리이었으나 강변도로가 뚫리면서 산자락이 많이 허물어져 나갔고 언덕 아래도 취수장을 건설하면서 많은 부분이 잘려져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정자에서 내려와 새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면서 '고덕수문교'다리 명판을 보니 건설일자가 2009년12월로 새겨져있다. 다리를 건너면 지금까지 걸어오며 본 경관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곳이 고덕 수변생태공원이다.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의 왕래와 격리된 채로 자연스럽게 조성된 둔치의 야생 식생지역이다.

 

 

 

무성한 관목의 숲 사이로 작은 오솔길들이 나있다. 모처럼 서울에서 보기 힘든 야생의 정원에 초대받은 느낌이다. 푸른 숲 사이 오솔길을 걷자니 태초의 에덴동산을 산책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나는 2년 전 겨울에 이곳을 찾아온다고 상일동역에서 출발하여 고덕천을 따라 걸어왔었다. 고덕천이 끝나는 한강 어구에서 생태공원을 눈앞에 두고도 못 찾고 발길을 돌려 미사리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있다.

 

 

 

산책로를 걷다보니 놀라서 날아가는 꿩 울음소리도 들리고 관목의 숲 속엔 개개비들의 울음소리도 요란하다.이곳은 내가 지금까지 서울의 한강의 본류와 지류를 걸으면서 찾아본 공원가운데 가장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예쁜 그림과 글씨로 학생들이 만들어 걸어놓은 자연보호 팻말들도 관에서 일괄적으로 만들어 부착한 것보다 훨씬 정감이 있다.

 

 

자연을 보호한다며 자꾸 손대고 시설물들을 만들어 설치하면 할수록 자연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자연스런 환경이란 사람들에게 어딘가 좀 불편하고 부족하고 보기엔 촌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고덕생태공원은 불편하고 부족한 상태로 오랫동안 머물러주기를 기대해본다. 좀 더 머물고 싶은 아쉬움을 남기며 저녁 햇살을 등 뒤로 하고 공원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