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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서 받은 멋있는 선물 (봉산능선)

Sam1212 2010. 4. 5. 09:07

친구에게서 받은 멋있는 선물(봉산능선)

나에게 이 길을 처음 소개해 준 사람은 파주에 사는 친구다. 친구들과의 몇 번 등산모임에서 "나는 다리가 아파서 산에는 올라 갈 수 없으니, 그냥 계곡에서 그림이나 그리며 쉬다가 니들이 내려올 즈음에 식당에 가서 기다릴 께"라고 불편한 다리를 핑계로 산행을 피했었다.

 

 

그때 파주에 사는 친구 '장묵'이가 매번 산행을 피하고 두세 시간 씩이나 산 밑에서 죽치는 내 모습이 안돼보였던지 어렵지 않은 산행 코스를 소개해주겠다며 봉산 능선을 소개하였다.

 

첫 번째 산행은 친구의 안내로 '서오능'에서 출발하였다. 서오능에서 친구가 자주 다니는 맛집에서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산길을 올랐다. 나도 서오능 쪽에 여러 번 가보았지만 산 능선을 타고 서울에 진입하는 길이 있는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이 산길을 지도상에서 한눈에 보기에 아주 편한 방법이 있다. 지하철역에 붙어있는 지하철노선도를 보면 된다. 이 지도에서 서울과 고양시 를 가르는 경계선이 바로 봉산능선이다. 지도상에는 그린벨트 지역으로 푸른색으로 나타나 있다.

 

친구의 안내로 서오능에서 출발해 능선을 오르는 길은 조금은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쪽 길은 등산객이나 걷기운동을 하는 분들도 거의 눈에 띠지 않았다. 산 구릉마다 대 전차 옹벽이나 참호와 같은 군사 시설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군 생활 과 예비군 훈련장에서 익히 보아왔던 시설들이다. 본래 이 봉산 능선 코스는 수색역 쪽에서 시작하여 구산동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정 코스이다.

 

사실 80년대만 하여도 서울에서 이쪽 지역은 군 작전지역으로 접근하기가 불편했던 곳이었다. 당시엔 구파발이나 행주산성 입구의 육중한 성문 같은 군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왠지 가슴이 오그라들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는 이지역에서 군 포병장교로 근무하다 전역을 하였기에 이곳 지리와 군의 작전 개념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우리의 좁은 한반도는 남북의 오랜 군사적 대치가 지속되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 군사 시설물 설치로 인해서 자연이 회손 되거나 오염되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때로는 환경보호 단체들의 엄청난 저항과 투쟁의 모습을 접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전후 혼돈의시기와 7.80년대 개발시대에 이 땅에 숨 쉴 수 있는 자연 녹지를 보존해준 공로는 군사 시설물 지역이다.

 북한산에 올라서 남쪽을 바라보면 끝도 없이 펼쳐진 아파트 숲과 건축물들이다. 반면에 북쪽을 바라보면 북한산 자락의 푸른 숲이 들판까지 펼쳐나가 있고 그 넘어 푸른 들판이 이어진다.

 

 2000년대 들어와선 그나마도 일산 화정지구 하면서 녹지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다. 용산에 미군부대가 점령하고 있지 않았다면 벌써 그 땅은 건축업자와 땅장사들의 욕심으로 빌딩 숲이 되었을 것이다.

 

봉산은 거북이를 닮았다고 구산이라고도 한다. 봉산 북단 자락에 있는 동 이름인 구산동의 유래이기도하다. 나는 구산 능선 보다는 지렁이 능선이라 부르고 싶다. 구불구불 늘어져있는 모습이 거북이보다는 지렁이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능선의 길이가 족히 5킬로 넘어 보인다.

 

서울에서 이만한 능선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능선은 낮은 구릉은 가파른 길이 전혀 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이어진다. 특히 걷기 운동하는 분들이 좋아하는 부드러운 흙길이란 점이다. 서울 주변의 모든 산들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져있어 암반을 걷거나 돌길을 걸어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빽빽하게 욱어진 참나무 숲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푹신한 흙길을 걷는 즐거움은 이곳 궁산의 지렁이 능선에서만 맛보는 걷기의 즐거움이다.

 

이 길은 산아래 은평구 사람들의 생활 공원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언덕 아래 펼쳐진 동네마다 봉산에 오르는 길이 나있다. 아침에 일어나 산길 한 바퀴 돌고 내려가 출근하고, 한낮에 더위 피해 산에 올라 정자에 누어 장기 한판 두기도하고, 저녁 먹고 애들 손잡고 올라와 함께 철봉에 매달려 운동하기에 딱 좋은 공원이다.

 

봉산 길을 걷다보면 작은 붕우리마다 정자가 있고 주변엔 운동시설이 마련되어 쉬어가기 좋다. 유심히 살펴보면 이곳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애정이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자마다 제가끔 은숭정 은덕정 덕산정 고은정 구룡아정 하는 정자들의 이름이 붙어있다. 이름은 물론 현판은 아마도 이곳 을 사랑하는 동호회원들의 직접 작명하고 제작하여 붙여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자의 기둥에는 거울이나 시계가 붙어 있다. 관에서 일괄적으로 구입해 부착한 물품들이 아니다.

 

수색역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서울시가 선정한 '우수조망 명소' 전망대가 마련되어있다. 이곳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은평구 마포구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관악산의 스카이라인이 아름답게 보이는 장소이다. 이곳에서 후면에 보이는 북한산을 바라보아도 장관이다. 골기가 넘치는 육중한 북한산 연봉들 밑에 펼쳐진 아파트촌들이 제 각기 키 자랑을 하고 있지만 우람한 북한산 과 마주하면 코끼리 앞 에선 개미처럼 나약해보인다.

 

봉산의 지렁이 능선은 그해 가을 내가 받은 제일 큰 선물이었다. 나는 이 선물을 몇 사람에게 다시 나눠주었다 . 모두들 이런 보물이 걷기 운동하는 분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숨어있었다는 데 놀라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