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고구려를 만나다.(아차산

Sam1212 2010. 1. 10. 10:06

고구려를 만나다.(아차산)

 

아차산 역에 내려 지하철 입구를 나와 두리번거리다 '고구려'라 쓰인 상업용 간판을 만났다. 고구려라니, 무슨 '고구려', 서울에선 좀처럼 접하기 낯선 단어이다. 우리가 학교시절 배운 고구려에 대한 지식은 만주벌 안시성 통화 즙안현 안악리 무용총 쌍용총 평양성 정도의 지명들 만 낱말로 퇴화되어 남아있다.

 

주변에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서너 명 씩 모여서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 눈에 띄고 산행 복 차림의 많은 사람들이 시장 쪽으로 걸어간다. 굳이 길을 물을 필요 없이 산행 차림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뒤를 따라가다 보면 시장골목으로 들어간다.

 

시장 통이다. 아파트촌에서 사는 분들은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정겨운 골목시장 풍경이 펼쳐진다. 싸고 풍성한 먹거리들이 길가 상점마다 즐비하다. 이곳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좀 사가지고 산에 오르는 게 좋다.

 

 이쪽저쪽 골목길에서 나온 산행객들이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걸보니 제대로 길을 들어선 게 분명하다. 지금은 2,3층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주택가 동네이지만 서울이 지금처럼 도시화되기 전엔 꽤 괜찮은 동네였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앞으론 멀리 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뒤엔 아차산이 우뚝 버티고선 전형적인 배산임수(배산임수)의 양택 마을들이 이곳 산자락마다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군자리 골프장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을 60년 전엔 더더욱 좋았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언덕길을 한참 오르다보면 영화사란 절이 보이고 학교가 나온다. 시간이 좀 있으면 절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괜찮다. 학교 옆길을 따라 워커힐 가는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아차산 등반로 입구가 나온다.

 

제법 큰 노송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잘 정돈된 등산로를 따라 소나무 숲길을 올라간다. 서울 한 복판에서 이만한 소나무 숲길을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소나무 숲 곳곳에 주민들의 쉼터도 잘 마련돼 있어 한여름 주민들의 더위를 식히기엔 최적지로 보인다.

 

 

소나무 숲길이 끝나고 조금 더 오르다보면 작은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물이 흐르지 않아 다리라고 부르기엔 좀 어색하고 요즘 흔히 쓰이는 건설목재로 만들었으나 다리 이름은 명품이다. '온달교' 50미터 전방에 '평강교'도 있다. 누가 이런 아름다운 다리이름을 작명하였는지 지금까지 들어본 다리이름 중에서 제법 운치 있는 이름이다.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러브스토리를 생각하며 두 다리를 건너 좀 더 오르면 언덕이 가팔라지고 암벽지대가 시작된다.

 

오르막길을 올라 능선에 서면 드디어 시원한 조망이 눈 아래로 펼쳐진다. 워커힐 뒷산 넘어 서울 강동지역이 한눈에 들어오고 구리시지역도 한강 상류 끝 양평까지 눈에 들어온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전망이 좋은 산봉우리는 군사요충지이다. 이곳에 고구려 국경의 전초기지가 있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강 이남의 백제 땅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적의 동태를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최적의 군사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이곳 아차산에는 고구려군이 머물며 생활하던 보루 터가 15군데나 발견되어 발굴조사와 함께 보존되고 있다.

 

산중턱에 펼쳐진 너럭바위 위에 새로 지은 '고구려정'이란 팔각정이 새로 생겼으나 신발을 벋고 올라가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산에 올라온 사람들에게 등산화를 벋고 올라오라니 좀 이해가 안 된다. 굳이 팔각정에 오르지 않고서도 너럭바위에 서서 땀을 식히며 서울의 남서쪽 을 한번 조망해보는 것도 일품이다. 특히 저녁노을 붉게 물들 때 저녁안개에 잠긴 서울을 내려다 보고면서 천 년 전 고구려병사의 변방을 지키며 고향생각에 잠겼던 모습을 생각해본다.

 

 

팔각정을 지나 해맞이 광장으로 오르는 길은 조금 더 가파르다. 암반틈새로 난 돌길을 힘들게 50미터 쯤 올라야한다. 좀 힘든 길이지만 아차산에서 가장 운치 있는 산길이다 암반틈새에 뿌리를 굳게 내리고 서있는 4,50년 된 소나무들이 하나같이 잘 가꾸어진 정원수다 . 서울지역 소나무 군락지 중에서 이곳만큼 아름다운 석간송들이 많이 있는 곳은 이곳이 제일이다.

 

 

 

해맞이광장, 광장이라 부르기엔 너무 좁은 느낌이나 3,40명이 올라서서 조망할 수 있는 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설치되어있다. 역시 이곳이 한강 이남을 한눈에 바라보기엔 제일의 장소로 보인다. 남쪽 멀리 남한산성 자락위로 아침 해가 떠오를 때면 서울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작년에 어느 분이 새해첫날 해맞이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이곳을 추천 했는데 오지 못하고 몽촌토성에서 맞이한 적이 있다.

 

'해맞이언덕'을 지나 능선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산 정상이 나오고 산길 옆에는 고구려 군 주둔지인 보루 터들이 나타난다. 산 능선을 따라 용마산 정상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

하산 할 때는 꼭 안내된 길을 따라야한다 . 대일외고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에 지정된 등산로를 따르지 않고 빠른 길을 찾아 사잇길로 내려가다 보면 험한 절벽 길을 만날 수 도 있다.

 

 

산길을 걸어가다 보면 길 아내 표지판들이 '광진구'에서 제작 설치되었으나 이따금 '구리시' 이름으로 붙여진 작은 안내문들을 만나기도 한다. 길옆에 설치된 지도 판을 보면 아차산 능선을 따라 동북쪽은 구리시 행정구역이고 남서쪽은 광진구 지역이다.

 

천 년 전에 아차산을 차지하기위해 고구려와 백제가 혈투를 버렸었고 지금은 아차산의 종주권을 차지하기위해 두 지자체가 기 싸움을 벌였으나 '광진구'의 승리로 돌아갔다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