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사진들
문명의 이기 카메라 발명이래 사진의 역사가 120년이 되었다. 아직도 사진은 기록 저장 수단으로서의 중요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삶의 주요한 장면들을 사진으로 만들어 저장해둔다. 지나간 과거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이유는 기억하기 위함이다.
20여 년 전 혼자 계시는 아버님 댁에 문안 인사차 들리니 앨범 정리를 하고 계셨다. 옛날 앨범의 사진 아래 날자와 간단한 설명을 붙이고 계셨다.
오늘 낡은 사진첩에서 빛바랜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생각해본다. 부모님 모두 세상을 떠나시고 훌쩍 한 세대가 흘러갔으나 당시 앨범을 정리하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헤아려볼 수 있다.
집에 유달리 앨범이 많다. 별도의 수납장에 보관하고 있다. 족히 20권은 넘어 보인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사진 찍기를 좋아하셨다. 사진 수집도 좋아하셔서 많은 사진을 물려받았다. 직장 생활을 하며 여러 차례 이삿짐을 꾸리면서도 물려받은 앨범만은 잘 챙겨서 보관하고 있다.
앨범이 애물단지가 되었다. 5,60년대 앨범은 사진 네 귀퉁이를 사진첩의
검은색 판지에 개별 접착하는 방식이었다. 7,80년대는 사진을 앨범 끈끈이 판에 올려놓고 셀로판지로 접착하는 방식이었다. 접착된 사진을 한번 꺼내면 다른 사진들도 줄줄이 떨어져 나와 애를 먹인다.
더 큰 문제는 젊은 애들이 자기 사진이 아닌 타인의 사진에 전혀 관심이 없다. 우리 집 애들이 앨범을 펼쳐보는 것을 본적이 없다. 특히 옛날 사진은 모두 흑백 사진으로 내가 가끔 떨어져 나온 사진들을 끼워 넣으려고 펼치면 옛 구닥다리의 곰팡이 냄새를 피하는 눈치를 보인다.
몇 년 전부터 어머니가 물려준 앨범 속의 주인공을 찾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사진 속 주인공은 모두들 세상 떠나가신지 오래다. 그분들의 자녀에게 이메일로 보내준다. 모두들 반가워 한며 정작 본인들은 없는 그 사진이 어떻게 우리 집에서 보관하고 있는지 물어온다.
작년에는 외갓집 4촌 형제들의 단체 카톡방에서 ‘시간여행’이란 제목으로 어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오래된 사진들을 연재하며 소개해 인기 연재물이 되기도 했다.
애물단지가 된 앨범들, 어쩌다 펼치면 빛바랜 흑백 사진에 더 애정이 간다. 전 직장 동료 한 사람이 앨범 리뉴얼 사업을 하기에 집안 앨범 20권을 한권으로 만들어 동생들과 애들에게 물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