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내가 바라본 세상

살려줘서 고마워!

Sam1212 2011. 10. 11. 18:37

살려줘서 고마워!

 

한 사람이 태어나서 천수를  다 누리고 자연사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행운이고 복이다. 한 생명의 의지에 반하여 외부의 반생명의 덫이 곳곳에 숨어서 천수로 가는 길목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싹한 기분이 든다.

 

생명의 여정을 따라다니는 태풍 홍수 가뭄 기근 벼락과 같은 자연 재해의 위험은 과학 문명의 발달로 극복되고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전쟁과 테러 그리고 문명의 이기로 인한 사고의 위험성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증가하고 있다.

 

현대의 문명생활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위험에 가장 가까이 따라다니며 위협하는 부분이 자동차로 인한 교통사고다. 천수로 가는 하이웨이에 불쑥 불쑥 끼어드는 이 장애물은 제아무리 노련하고 조심스런 운전자라도 등골이 오싹하는 경험을 만들어낸다.

 

차를 운전하는 많은 사람들은 적어도 몇번의 아찔했던 순간들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본인은 그 위험의 순간을 운 좋게 넘겼을지라도 주변을 살펴보면 가까운 친지 중의 한두 사람은 사고의 가해자나 희생자가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점심 시간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칼국수를 한 그릇 하러 가는 길이었다. 200미터 정도를 걸어가는 길 좌측으로는 천변을 따라 4차선 도로가 나있고 우측으론 주택가와 작은 정비공장들이 몰려 있다.

 

 한낮엔 통행인도 많지 않아 한적한 길이다. 작은 횡단보도가 하나 있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신호등도 없고 그대로 건너면 된다.

 

 

횡단보도를 중간쯤 건너갈 때였다. 좌측 큰길을 달려가던 트럭이 갑자기 좌회전을 하며 나한테 돌진해 왔다. 나와 차와의 거리는 불과 6~7미터 정도였다.

 

 차의 달리는 속도로 보아 1초안에 생사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급박한 상황에서 내 뇌의 정보 판단 시스템도 빠르게 돌아갔다.

 

 시각정보는 즉시 신경 전달 물질을 타고 시냅스를 연결하여 편도체에 도달함과 동시에 행동으로 옮겨졌다. 이대로 부딪치면 최소한 중상이다.

 

우선 다리를 보전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피하지 못하면 절둑발이가 되든지 영원히 걸을 수 없게 된다. 몇 해 전 왼쪽 무릎 관절 수술로 뛸 수는 없어도 그나마 걸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는데 걷기마저 할 수 없다면 그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자동차의 돌진 속도보다 내 다리의 움직임이 조금 빨랐다. 왼쪽 다리를 우로 반 발짝 움직였다고 생각했을 때 자동차의 백미러 판이 왼쪽 어깨를 강타했다.

 

강한 충격에 나의 몸은 우측으로 힘없이 튕겨져 넘어갔다. 아스팔트 바닥에 넘어지는 순간 나의 판단이 정확했고 성공했음을 알았다. '아! 살았다. 내 판단이 옳았어' 라는 생각과 함께 순간의 기쁨이 스쳐지나갔다.

 

천만 다행으로 트럭의 백미러 판은 왼팔 어깨근육의 살이 많이 붙은 부분을 쳤다. 10센티만 아래 부분에 닿았으면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이고 위쪽이면 머리를 맞아 대형 사고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시간상으론 0.1초 거리상으론 10센티가 생사의 가름이었다.

 

 

부딛친 왼쪽 어깨를 오른손으로 감싸며 일어섰을 때 트럭 운전기사가 차를 갓길에 세우고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선생님"

"괜찮아"

 

운전기사는 30대 후반의 젊은이다. 갑자기 화가 났다.

"아니, 왜 갑자기 핸들을 틀어서 달려든 거야? 나한테 무슨 원한 있어?"

내가 언성을 좀 높여서 말했다.

 

"저--, 내비게이션을 보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가 당황해 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조심해서 운전해야지.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아"

내가 크게 다치지 않은 걸 확인하고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그가 다시 말했다.

"병원에 가봐야 되지 않을까요? 선생님"

 

"크게 다친 곳 없으니 병원에 갈 필요는 없고, 그런데 혹시 필요 할지도 모르니 명함 있으면 주게."

이미 넘어지는 순간에 다친 곳이 없음을 알고 있어 병원에 가보자는 운전기사의 권유를 거절했다.

"명함은 없고 핸드폰 번호 알려주시면 제 번호 찍어드리겠습니다."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고 나자 참았던 배고픔이 밀려와서 식당 방향으로 걸어갔다. 운전기사가 나를 따라오며 정말 괜찮으냐며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나에게 사례를 하려했다.

 

그의 열린 지갑 속에 만 원 권 지폐 서너 장이 보였다. 내가 필요 없다고 손 사례를 치자 그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식당으로 걸어가는 중에 핸드폰에 진동음이 울렸다.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마치고 나서 식탁에 앉아서 조용히 생각해보았다. 불과 수 분전에 죽음의 덫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고 다음 단계인 칼국수를 기다리고 있는 내 자신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운전수의 전화번호(010-5245-37xx)가 선명하게 찍혀있다. 뭐라고 한마디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 아직도 어깨쭉지가 얼얼하네, 죽는 것과 사는 것이 순간의 차이라네, 앞으로 조심해서 운전하게나."

 

오른손으로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데 핸드폰에 진동음이 들렸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배송 끝나면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한 번 문자를 날렸다

"찾아올 필요 없네, 살려줘서 고마워!"

 

200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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