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초소 일지)

초소이야기17 (조각병 최병도)

Sam1212 2020. 2. 24. 12:40


조각병 최병도


군생활이 원숙기에 이르러 일상에 좀 여유가 생기면 전역을 앞둔  고참병들은 군 생활을 추억 할 기념품을 하나쯤 만들어가지고 나가길 원한다. 당시에 전방 군인들은  탄피를 쇠톱으로 잘라 목걸이나 반지를 만들었다. 고지에서 생활하는 군인들은 작은 목조각 기념물을 만들기도한다.


까치봉으로 첫 부임하여 신참 소대장 때다. 선배인 1소대장 한중위를 따라 인접 대대 건봉산의 한중위 동기가 소대장을 하는 초소를  야간에 방문한 적이있다. 나는 그곳에서 피나무 바둑판과 선임하사가 만들어 가지고있는  멋진 조각품들을 보았다. 그 조각품들은 홍익대 미대를 다니다 입대한 사병이 만들었다는 자랑을 들었다. 함께 간 한중위도 그 조각물들이 욕심이났던지 선임하사와 내기 바둑을 두면서 한 개를 얻으려고 무진 애를썻으나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당시 장교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념물은 피나무 바둑판이다. 바둑판을 만들려면 피나무가 최소 직경이 40센티는 넘는 거목을 구해야한다. 강원도의 첩첩산중 전방이지만 무수한 군인들이 수십년을 거쳐갔기에 아름드리 피나무가 산중에 남아있을리 없다. 

까치봉에 근무할 때 나도 한번은 노련한 고참 대원을 몇명 데리고 피나무와 더덕밭을 찾아보겠다고 계곡 아래로 내려가 한나절 헤매고 다닌 기억이있다. 


우리 해안 초소는 중대로 배치되어 오는 신병들의 첫 기착지다. 어느날 순찰을 돌고 소대 방카에 들어서니 신병 5명이  중대 배치 명을 받고 가는길에 우리 초소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있다. 모든 신병들이 그렇듯이  커다란 더블백을 두발 앞에 놓고 논산 훈련소에서 지급한 헐렁한 모자를 눌러쓰고 허리를 곳게펴고 잔뜩 긴장한 상태로 앉아있다. 이때 고참 병 몇명이 근무를 마치고 들어오면서 앞으로 지나가다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다. 고향이어디냐? 군에들어오기 전 뭘 했었느냐? 긴장한 신병들은 고참 병사의 질문에 큰 소리로 답변을 한다. 멀리서 신병과 고참병의 대화 중 '조각'이란 단어가 귀에 확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조각을 했다는 신병을 찾아 직접  신상 파악을 했다. 입대 전 서울에서 대형 공방에서 조각사로 근무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신병을 옆으로 빼내 몇가지 주의와 당부를했다. 중대에 전입신고하러 올라가면 신상파악을 다시 하는데 절대로 조각했다는 사실을 말해선 안된다. 그래도 혹시나 신병이라 순진해 발설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만약 '조각'이나 'ㅈ'자만 뻥긋해도  앞으로 군생활이 힘들어질 수 도 있다고 약간의 겁도 주었다. 그 신병은 몸이 좀 뚱뚱해서 일반적으로 소대장들이 선호하는 운동을 잘하거나 행군이나 힘든 작업을 잘하는 체형은 아니었다. 우리 소대도 신병을 1명 충원 받아야했다.  내가 직접 중대본부에 올라가 조금은 좀 어눌해보이는 그 병사를 우리 소대에서 받겠다고 찍어서 데리고왔다.


그 병사 이름이'최병도'다. 소대장 생활 1년만에 드디어 보물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병이 소대 생활이 익숙해질 때 까지 몇개월을 다른 신병들과 동일하게 생활하게했다. 그리고 그가 주변 환경과 초소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생각이들었을 때 특별한 임무를 부여했다. 벙커의 빈방을 하나 내주고 조각을 전담케하였다. 우리 초소 벙커는 좀커서 빈 방이 2개나 있었다. 마침 송도 앞 DMZ에 들어가 작업하던 중에 우연히 찾아내 베어가지고 나온 피나무와  오동나무가 좋은 조각 재료가 되었다. 소대의 분대장들과 고참병들에게 최병도가 근무자 편성에서 빠지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해주고 입단속도 시켰다. 훈련과 근무 열외는 소대장 권한으로 가능하나, 혹시 그의 특기 활동이 소대 밖으로 새어나가 빼았기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소대 조각병 최병도는 특별히 마련된 지하 벙커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에만 열중했다. 휴가자 편에 서울에서 조각칼 세트를 구입해와 지급해주었다. 맨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은 군함이다. 주로 해군들이 많이 만든다는 구축함 모형이다. 피나무를 잘라 몸통을 만들고 안테나와 함포를 만들어 붙인다. 쌀알 만한  대포알도 깍고 다듬고 사포로 문질러 본드로 붙이고나니 제법 멋진 모형 군함이 탄생했다. 제대하는 대원들에게도 작은 소품을 만들어 기념품으로 전해주니 최병도의 근무 열외에 모두들 불만이없었다.

 

소대원들에게 철저한 입단속을 했지만 6개월정도 지나 결국 중대장이 알게되었다. 중대장(윤우완 대위/3사)은 밖에서 좀더 좋은 재료들을 구해와 나에게 작업을 요구했다. 중대장의 오동나무 바둑판과 주목으로 바둑알통을 만들었다.재료가 좋다보니 그간 내가 만든 군함과 용모형들은 시시한 작품으로 보였다. 소대의 조각병 최병도는 결국 대대까지 소문이나서 대대장에게 빼았기고 말았다.


그가 만든 작품 군함과 용은 휴가 때 가지고 나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사다닐 때 마다  보물처럼 들고 다녔다. 그후 수년 지나 백화점에 진열된 더 좋은 작품들을보니 좀 유치해보이고 집안의 거추장스런 물건이되어서 모두 버렸다. 마지막으로 최병도가 서명을 한 거북모양의 담배갑 세트가 아버님댁 현관에 놓여 있었다. 수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집을 처분하면서 방문해보니 아쉽게도 쓰레기 치우는 사람들이 모두 내다버려 찾을 수 없었다.


소대원 최병도가 만들고 특별히 서명을 해 준 그 기념물 잃어버리고나니 무척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