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초소 일지)

초소 이야기 15 (송편 만들기)

Sam1212 2020. 2. 24. 11:58

 추석 송편 만들기(1977년)

 

철책선에서 명절을 맞이하는 기분은 항상 썰렁하다. 우선 남자들의 세계라 명절 기분을 좀처럼 느끼기 어렵다. 추석이나 설날은 특식이 나오지만 그 것 만으로 명절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다. 

 

초소장이 조금만 준비하면 명절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을 맞아 송편을 초소 자체로 빚어보기로 했다. 소대에 급식용 쌀은 충분했다. 소대장  전령을 보았던 대원(문준근/ 장흥) 이 입대 전 떡집에 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송편을 만들어보라는 지시를 했다. 쌀 30kg 정도를 커다란 군용 플라스틱 용기에 넣고 물을 부었다. 떡을 빚을려면 물에 불린 쌀을 가루로 만들어 내야한다. 통상 가정에서는  떡방아간에 가면 잘 빻아준다. 송편을 만드는 임무는 쌀 가루를 어떻게 만들어 낼것인지를  해결하는  문제였다.

 

소대에 가진 장비라곤 아무것 도  없다. 단지 풍족한 인력이 제일 큰 자산이다. 소대벙커 지붕 위 대공 초소에 2명이  24시간 근무를 서는데 실제로 큰 할일이 없다. 근무자에게 쌀가루를 만드는 임무를 주었다.   군용 양동이에 쌀을 조금씩 넣고 나무를 깍아 만든 소대장 아령을 절구공이로 삼아 빻았다. 밤새도록 쌀을 빻아 어렵게 가루를 만들어냈다. 가루를 골라내는 '체'가 필요했다. 지하 벙커 창문의 철망으로 된 모기장을 뜯어내 두겹 겹쳐서 쌀가루를 분리해냈다. 결국 대공 초소 근무자들이 몇 일 동안 노력하여 임무를 완수했다. 점검해보니 정성들여 수 없이 빻았으나 떡방아간 처럼 쌀가루를  곱게 만들 수는 없었다. 

 

 이곳 초소는 깊은  산 속이 아니고 해안가에 있어 부대 밖과 접촉하기에 조금 수월하다. 선임하사가 외출편에 소를 넣을 콩과 설탕을 구입해 들여왔다. 몇몇 대원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솔잎을 따서 가지고왔다. 드디어 취사장에서  송편을  만들어 시식해보라며 들고 왔다. 거무스름한  통만두 처럼 보였다. 쌀 가루가 곱지않아 송편의 접착 부분이 벌어져 속이 흘러나온 것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맛은 좀 떨어지지만 대원들은 우리가 직접 빚은 추석 송편으로 그 해 명절 분위기를 살려내고 즐겼다.

 

추석날 우리는 직접 빚은 송편과 약간의 과일을 가지고  초소에서 700m 정도 떨어진 철모고지 주간 초소 에서 제례를 올렸다. 전 대원의 무사고 전역과 고향의 부모님을 향한 효심의 의식이었다. 제례식에서 한 대원(신한기/부산) 이 담배에 불을 붙여 제단에 놓았던 기억이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