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초소 일지)

초소이야기 10 (카타콤 예배)

Sam1212 2020. 2. 24. 11:50


카타콤 예배


철책선 부대에도 일요일(휴일)은 있다.  군에서 일요일은 훈련이나 교육 또는 작업 지시가 없다. 일과 시간표에는 주로  목욕 이발 세탁 정비 란 용어가 등장한다. 전 대원들이 일주일간 밀렸던  목욕 세탁이나 정비를 한다.

그러나 철책선 부대는 좀 다르다.경계근무는 24시간 빈틈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낮 일과 시간에도 대원들이 한 번에 한 자리에 집합하기 어렵다. 주 임무가 철책선 경계인 만큼 일부 대원들은 항상 경계에 투입된다. 야간 근무는 전반야조(해질무렵부터 자정까지)와 후반야조(자정에서 해뜰때까지)로 나눠 근무에 투입되고 후반야조 투입 인원은 오전에 취침에 들어간다. 따라서 일요일 아침 식사 시간과 오후가 되어야 전 대원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


처음 까치봉 7-5 P에 첫 부임하여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일요일 오전에 소대 상황병을 보고 있던 고영대(충남 당진)가 소대장실 문을 노크했다. 상황병은 소대장과 근접 거리에서 항상 가까이 지내기에 소대의 문제점도 말해주고 대원들의 건의사항도 올라오는 통로다. 고영대의 건의는 일요일에 소대서 예배를 보고싶다는 내용이였다. 당시 대원들의 신상 파악을 통해 알게된 종교 상황은 기독교로 신고한 대원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다른 종교나 무교로 표시한 대원도 많이 있었다.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으나 허락해주었다. 그 시절  젊은이들의 일반적인 종교인식이 특정 종교에 절대적이거나 다른 종교에 배타적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판단 했다.


일요일 전 대원이 아침 식사를 마친뒤 벙커에 모여 일요 예배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입대 전 초등학교 시절 교회 한 두 번 가본 적은 있으나 교회 다닌다고 말하긴 어려운 상태였다. 예배 인도는 고영대가 맡아했다. 소대에는 외부에서 제공한  손바닥 만한 작은 성경책들이 많이 있다. 예배의식 이라야 간단하다. 주기도문 외우고 찬송가 한 곡 부르고 성경  구절 읽어주고 고영대가 대표기도하는 순이다. 전 대원을  모두 참석토록 강요하진 않았다. 그러나 초소장인 내가 항상 예배에 참석하니 모든 대원들이 함께 했다. 당시 주로 불렀던 찬송가는 '태산을 넘어 험곡에가도'였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않네" 찬송가도 항상 고영대가 선곡했다. 참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벙커 내부는 대원들이 생활하기엔 무척 좁은 공간이다. 생활을 위한 공간이 아니고 잠을자는 공간이다. 요즘 도시의 30`평대의 아파트 공간에 30명이 넘는 대원들이 잠을 잔다. 좁은 공간에 목재 2층 침상을 만들어 놓았다. 당시에도 철책선에 지하벙커로 된 초소와 별개로 지상 건축물의 넓은  초소 막사도 있었다. 운없이도 우리는 6개월 마다 돌아오는 철책 근무 투입시  모두 지하 벙커 초소에서 생활했다. 당시엔 전기불도 없어 호롱불을 밝히며 생활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초임병들은 호롱불의 유리로된 호야를 깨끗이 딱는게 일과였다.


지하 벙커의 컴컴한 침상 아래 위 칸을 꽉 채워 쪼그리고 앉은  대원들이 일요예배를 드린다. 어둠을 밝히는 호롱불에  성경책 작은 글씨를 고개숙여 들여다 보는 대원들, 벙커내에 '태산을 넘어 험곡에가도' 가 우렁차게 울려퍼진다. 나는 이 광경을 기억할 때 마다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지하 묘지(Catacomb/ 카타콤)에 모여 예배를 보았던 교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철책선 경게부대는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근무자는 실탄이 장전된 소총을 항상 소지한다.야간 근무자는 수류탄까지 휴대하고 근무에 나가기 때문에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있다. 대원들도 이런 미지의 위험으로 부터 긴장감을 덜어내기위해 예배에 참여하고 마음의 위안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칠흑같은 밤 가파른 언덕의 철책선 순찰로를 밧줄을 잡고 오르내릴 때면 우리가 부른 찬송가 구절이 생각나는 것은 아마 모든 대원들이 같은 마음 이었으리라.



일요 예배를 제안했던 고영대 병장 그가 고맙다. 우리 대원 모두가 한 명의 부상자나 낙오자 없이 무사히 군무를 마쳤다.  이 은혜를 카타콤의 일요예배로 돌리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