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초소 일지)

초소 이야기 24 (팔각정 건축)

Sam1212 2020. 2. 24. 11:54


팔각정 건축


초소 벙커 지붕 위 취사장 앞에 10평 정도의 빈 터가 있다. 이곳에 서서 사방을 바라보면 후방에 대대본부(현재 통일전망대)와 전방에는 낙타봉(북 GP와 동굴진지가 들어있는 구선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때 나의 군 생활도 원숙기에 접어들어 눈 감고 있어도 대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훤히 눈에 들어왔다. 전 대원들의 훈련도 잘 되어있어 누구와 겨뤄도 자신있다는 자부심과  만약 전쟁이 터지면 앞에 보이는 금강산으로 달려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다.

 

나는 그해 여름 이곳 벙커 지붕 위에 멋있는 정자를 하나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정자를 세우기위해선 큰 나무들이 필요했다.  철책 이남 지역은 수 십년간 필요한 나무를 모두 베어 큰 나무는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위험을 감수하고 DMZ 내로 들어가 베어가지고 나와야한다. 우리 초소 앞에는 적의 전차 접근로라 표준형 지뢰지대가 넓게 깔려있다. 사실은 미확인 지뢰지대가 더 위험하다. 전방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반은 지뢰사고다.

 

전 대원들을 집합시키고  정자  건축을 위해 철책안에 벌목 작업 들어갈 지원자를  모집했다. 지뢰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시키고 나서 들어기 싫다든지 제대 말년으로  몸조심하겠다는 대원들은 제외시켰다.

 

많은 대원들이 자원을 했다. 9명의 대원을 인솔해 들어갔다. 맨 앞에 선 대원이 지뢰덧신(두꺼운 철판 밑창을 댄  군화)을 신고 지뢰탐지기를 앞세웠다. 풀섶을 한 발작 씩  삽으로 앞 사람이 밟았던 발 자욱을 파내며 조심스럽게 일렬 종대로 전진해 나갔다. 철둑길 아래를 따라 송도 옆 나무가 욱어진 산언덕에 다다랐다. 이때 아카시아 숲 속에 산딸기 밭이 펼쳐졌다. 모두 긴장감이 확 풀렸다.  철모를 벗어 딸기를 따 담았다.사실 사고가 없었으니 다행이지 위험한 순간이었다. 지난번 초소에서  찾아 헤맸던 아름드리 피나무도  하나 발견했고, 커다란 오동나무도 있었다. 피나무 오동나무 그리고 팔각정을 세울 커다란 아카시아를 베어서 등짐을 지고 들어왔던 발자욱을 밟으며 나왔다. 피나무와 오동나무는 냇물이 흘러 바다에들어가는 곳에 묻어두고 나왔다. 이 나무는 나중에 기념물 조각 원목으로 유용하게 사용했다.

 

팔각정을 세웠다. 크기는 요즘 해변에서  사용하는 비치파라솔 보다 조금 큰 규모다. 몇일 후 북과 남쪽 대대본부로 부터 시계를 가리기위해 송도에서 대나무를 베어 가지고와 발을 엮어서 울타리를 둘렀다. 완공 후 팔각정 의자에 앉아 앞을 바라보니 명사십리 백사장이 펼쳐나가  금강산 끝자락 구선봉과 만나고, 우측으론 푸른 동해바다에서 만들어내는 파도가 쉼없이 밀려오는 최고의 절경이었다. 


이곳에 앉아 동해를 바라보며 식사를 했던 긴장 속의 낭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