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 이야기(초소 일지)

초소 이야기9 (빳다)

Sam1212 2020. 2. 24. 11:43

빳다

 

1970년대  군 생활을 경험한 남자라면 군대 이야기 중에 공통으로 나오는 단어가 '빳다'라는 용어다. 영어 배트(Bat/ 몽둥이)의 한국식 표현이다. 빳다는 군에서 상급자가 하급자를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려 체벌을 가하는 행위다. 이런 가혹행위는 일본군의 악습으로  일제시 일본군에서 복무했던 군인들을 통해 초기 한국군으로 전수되었는 설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으로부터 많은 선진적 군사 문화가 전수되었으나, 내가 군생활을 경험한 78년까지는 실재하는 악습이었다.

군 수뇌부에서도 이런 비민주적 악습을 제거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쉽게 근절되지않고 오랬동안 지속되었다.

당시에도  체벌을 금하는 '얼차려'라 부르는 군기 위반자에 대한  새로운 신형 통제 방법이 내려와 시행되었던 기억이 있다.

한 세대가 지나 우리 아들 둘이 군생활 하는 동안 확인해보니 이런 악습이 말끔이 사라져있어 다행이었다.

 

 내가 소대장을 할 때에도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하에 이런 빳다 행위가 있었다. 제일 많이 일어나는 유형은  선임병이 하급자에게 가하는 체벌이다. 당시엔 사회 편견과 지역간 감정이 군에까지 스며들어 있어 경상도 출신과 전라도 출신 병사간의 알력이 심했다. 전라도 출신 왕고참 병장 성격이 좀 거칠면 그가 전역할 때까지 경상도 출신의 상병과 일병들이 기를 펴지 못했다, 그가 제대하여 경상도 출신 병장이 패권을 잡으면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충청 경기 서울 강원 지역의 병사들은 지역색이 적어 모두 호감을 가지는 편이었다.

 

당시는 3년 복무 기간으로  입대 순 서열이 딱 정해져있다.  이 틀에 한번 들어가면 깨기가 어려웠다. 신참병들이 고생했던 일들이 본인이 고참병이되면 본인들이 당한 악습이 당연히 누려야할 특권으로 의식하며 후임병들에게  이어지는 악순환되는 구조였다. 

 

군대는 계급사회다. 군법과 규율에의해 통제를 받는다. 이 법에 따른 계급 질서가 무너지면 명령 지휘계통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전시에 강군이 아니라 오합지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소대에도 소대장 아래 선임하사와 분대장 4명이 있다.  당시 하사관학교에서 특별 교육을 받고 부대배치를 받은 유능한 분대장들이었지만 소대 고참병들과의 알력이 있기도했다. 고참병들이 만들어 가지고있는  기득권과 서열 의식이 군의 계급 서열과 일치하지 못하고 마찰하는 현상이다.

 

소대장이 임무를 잘 수행하려면 이런 구조와 대원간의 상호 관계를 잘 파악하고 기강을 세울 수 있어야한다. 특히 GOP 소대에서는 기강이나 질서의 해이는 곧 인사 사고로 이어진다. 60년대 155마일 휴전선에 철책선이 들어서고 난 이후 북한군과 교전에의한 사고는 거의 없어졌다. 모든 사고는 군 내부의 기강해이나 조직내의 계급 갈등에서 발생하는 사고다.  

내가 소대장을 할 때에도 우리 부대에 몇 건의 사고가 있었다. 당시는 군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요즘 처럼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지뢰사고 폭발물사고 가혹행위 사고로 안타까운 죽음과 부상당한 병사들을 직접 목격했다. 

 

나도 초소장 시절 빳다에 관한 몇 번의 일화가 있다. 일반적으로  장교들은  화가나도 빳다를 통해 체벌을 가하거나 기강을 유지하지 않는다.

장거리 이동시 행군을 한다. 통상 도로 양편으로 줄을지어 걸어간다. 행군중에 일정 대오를 갖추고 병사간 거리를 유지하며 군기를 유지하도록 지시한다.   행군 대열 속으로 차량이나 민간인들이 지나갈 때가 많다. 

 

한 번은 산에서 내려와 마을 앞을 지나가는데 마을 처녀 한 명이 우리 행군 대열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대열 앞에서 인솔해가면서 뒤를 바라보니 대열 속으로 들어온 마을 처녀를 희롱하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그처녀는 부끄러워 어쩔줄몰라하다가 큰길을 벗어나 힘든 밭둑길로 들어가고 있었다. 화가나서 희롱했을 병사 몇 명을 점검해보니 술기운이 좀 있어보였다. 수통을 확인해보니 술이 나왔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터져나왔다. 행군을 중단시키고 전 대원을 업드려뻣쳐를 시켰다. 길 옆의 커다란 나무가지를 꺽어서 빳다를 쳤다. 너무 화가나서 맨앞에 대원부터 3대씩 때리며 내려오다 내가 힘이빠져 뒷줄은 1대씩 박에 때리지 못하고 끝냈다. 별로 큰 사건도 아닌데 소대장이 너무 심하게 대한다는 표정을 대원들에게서 읽었다. 사실 빳다는 심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학교시절 삼국지에서 읽은 군이 주민에게 피해를 주면 절대 강군을 만들 수 없다는 잠재의식이 작용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해안초소 근무시 일이다.  화장실은 벙커에서  20미터쯤 떨어진 옥외 건물이다. 자정을 넘어 1시쯤에 화장실에 가는 중이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툭하며 이상한 물체가 발 앞에 떨어졌다. 기이한 생각에 집어들어 확인하니 꽤 커다란 몽둥이였다. 몽둥이가 날아온 방향으로 올라가보니 취사장 건물 앞에 대원들 몇명이 부동자세를 취하고 서있다. 고참병(주문종/옥천)이  후임병 몇명을 불러내 막 일을 끝내고 집어 던진 것이 하필이면 화장실 가는 내 발 앞에 떨어진 것이다.

 

얼마전 이 이야기를 전우회 송년 모임에 했더니  대기업 임원을하고 얼마 전에 퇴직한  김승환사장이 "소대장님 그 때 제가 주문종 선배한테 그 빳다 맞았습니다" 라고 말해 함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