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대 회식
벙커 안에서의 소대 회식은 정말 멋있다. 나는 회식 군기를 잡기위해 언제나 대원들이 집합한 상태에서 시작과 마침 보고를 철저히 받았다. 모처럼 오랜만에 술이 들어가면 평상시의 기강이 무너지고 사고의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험에 의하면 남자들의 세계에서 술이 취하면 열에 한 명 정도 꼭 이성을 잃고 행동하는 사람이 나온다.
대원들 모두 아래위 침상에 앉은 자세로 정열해 회식 보고를 하며 시작된다. 취사병은 부족한 부식이지만 특별 안주를 만들어 내온다. 경월 소주 댓병 4개가 들어오면 고참병 순으로 반합 뚜껑 술잔이 돌아간다. 분대장과 고참은 2~3개 정도 돌아가고 신참병은 가까스로 1개 정도 받아마시며 감지덕지한다. 4병이면 대원들 주량에 적당하다. 회식은 취기가 올라가는 상태에서 조금 아쉬운 맘으로 끝내도록 햐는게 좋다. 분위기에 휩쓸려 한두병 더 들어오면 정말 위험하다. 만취되어 이성을 잃는 대원이 나오면 속수무책이다. 사고는 곧 인사사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하 벙커이기 때문에 아무리 큰 소리를 질러대도 밖으로 새나가지 않는다. 취사장에서 가져온 식판 물통 철제 양동이등이 악기로 등장한다. 얼마전에 히트한 '난타'는 우리가 원조인 셈이다. 주로 불렀던 노래는 '전선 편지' '삼팔선의 봄' 당시 유행했던 '나는 못난이' 그리고 여체의 몸을 비유해 개사한 '진지 투입가'가 기억된다.
회식이 끝나면 나는 다시 긴장한다. 이날 밤 만큼은 잠을 자지 않고 대원들과 밤새도록 순찰 활동을 함께 한다. 가끔 술취한 대원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따금 약삭빠른 고참 대원이 있어 마달리 작전을 다녀오며 술병을 한 병 빼돌려 초소 아래 풀 숲에 감추어두고 근무중 불법 음주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해 들었다.
지금 까지 수 많은 회식 자리를 경험 했지만, 지하 벙커 안에서 대원들과 함께 했던 신나고 스릴 넘치던 그런 회식자리는 가져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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