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만의 만남
도시 생활하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 즐거움 중 하나는 만남의 즐거움이다.
도시의 팍팍한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모임과 만남의 약속은 생활의 활력과 즐거움의 발원지이다.
즐거운 사람과의 만남 보고 싶었던 사람과의 만남 오랜동안 소식이 끊겼던 사람과의 재회의 기쁨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이런 사람들과의 만나 삶을 동행하며 가는 길이 행복의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만나서 이야기하고 서로의 생각과 정보를 나누며 함께 식사하고 술잔을 건네는 일은 특히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존재감을 실현하고 살아 있음을 증거하는 일이다.
코로나19 역병이 가져온 많은 생활의 불편 중에서 으뜸은 만남의 기쁨을 빼았아가는 것이다. 지난주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발표되었다. 모든 행사금지, 4인 이상 모임 금지, 6시 이후에는 2인 모임만 가능하다. 한 단계 더 조여든 사회 활동의 제약은 도시인들에게 만남의 기쁨을 빼았아가는 정신적 압박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몇일 전에 즐거운 만남이 있었다.
"아 여보세요, 최덕기 소대장님 이십니까"
"아~ 네 그런데요"
"저 정삼챕니다"
누워서 책을 보고 있는 데 전화음이 들렸다. 핸드폰 창에 발신자의 이름이 뜨지 않았다. 요즘들어 발신자 이름이 뜨지 않는 전화는 잘 받지 않는다. 내가 알고 교류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화번호부에 이름이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070 으로 시작되는 광고 전화 뿐 아니라 요즘은 010으로 시작되는 개인 전화로도 하루에 두세번 달갑지않은 광고 선전 전화가 걸려오기 때문이다. 이름이 뜨지 않았는데도 받았기에 다행으로 옛 소대원과 반가운 만남의 연결이 이루어졌다. 헤아려보니 비록 전화 통화지만 45년만의 만남이었다.
정삼채 병장은 경북 청도가 고향이다. 보통 체격에 온화한 인상으로 동료 뿐아니라 선임병과도 잘 어울리는 보통의 대원이었다. 특별한 기억이 몇개 떠오른다. 정삼채는 소대 이발병으로 활동했다. 이발병은 소대원 중에서 손기술이 섬세한 대원들 한명을 이발병으로 양성해 활용한다. 내 머리도 10번 쯤은 깍아 주었다. 한달에 한번 초소 벙커 앞 마당에 작은 나무 의자에 노란색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앉으면 정삼채가 머리를 정성들여 깍고 면도 까지 말끔하게 해주었기에 특별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또 하나의 기억은 정삼채 병장이 전역을 앞두고 그가 속한 분대원 전원이 탄약고 파견근무를 했었다. 부대 주둔지 간성에서 10Km 후방의 동해안 오호리 해수욕장 부근이었다. 파견 분대에 순찰 나갔다 근무 군기가 불량해 기합을 주고 돌아왔던 기억이다.
그와 반갑게 30분이 넘게 통화하면서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입수 했는지 물어보았다. 인터넷 검색하다 다음 포털에 본인의 이름을 쳐 넣었는데 이름이 화면에 떠 확인해보니 고향도 같았다. 내용을 읽어보니 자신의 군대 이야기가 쓰여 있어 놀라고 무척 반가웠다 말한다. 40년도 더 지난 자신의 군대 이야기를 본인의 기억보다 더 생생하게 사실 그대로 기록해 놓아 더욱 놀랐다고 말한다.
글을 다 읽고 나서 반가운 마음에 내 연락처를 찾아 보았으나 찾지 못해 고생을 했다 전한다. 블로그에 올린 다른 글 중에 함께 군생활을 한 변은섭 대원이 경영하는 회사 이름이 나와 그 회사에 전화를 걸어 내 전화번호를 알아냈다고 말했다.
정삼채 병장은 제대 후 공무원으로 40년 가까이 근무하다 정년을 마치고 지금은 부산에 거주하고 있다 전했다. 우린 시간가는 줄 모르고 통화하며 시간을 45년 전으로 되돌려 청춘 시절로 돌아갔다. 팔팔했던 20대에 최전방 철책 소대에서 소대원과 소대장으로 만나 험난했던 군 생활을 자랑스럽게 마쳤고 헤어진뒤 45년이 지나 이젠 모두 흰머리의 할아버지가 되어 만나니 할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우리 소대 전우회 모임이 매년 봄 가을로 이어져 오다 코로나 사태로 중단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당시 함께 생활했던 전우들의 소식도 들려주었다.
'초소 이야기'란 10여년 전에 블로그에 올려놓았던 70년대 GOP 초소에서 일어났던 스토리다. 초소이야기 총 33편 중 27 '파견근무' 편에 정삼채 병장이 등장했었다. 2000년대 중반 블로그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외부인들이 방문해 댓글 달고 답해주는 일들이 번거롭고 신경쓰여 비공개로 전환해 놓았다. 이 스토리를 쓰면서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등장 대원들의 실명과 출신 고향을 기록한 것이 만남의 끈이 되었다.
최근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옥외 모임과 만남의 장이 많이 줄어들면서 집콕 생활하는 일상이 지속되고 있다. 무료함을 덜기 위해 블로그에 써 놓았던 글 중에서 '초소이야기'를 동기들 단톡방에 연재 형식으로 올려보았다. 다행이 많은 동기들의 반응이 괜찮았다. 이 과정에서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이 비공개에서 공개로 넘어가며 마침 정삼채의 검색에 걸리게 된 것이다.
이번 옛 소대원과의 만남의 기쁨은 코로나 19 팬데믹이 만들어 주었고 인터넷 문화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이라는 어둠의 터널 속에서도 찾아보면 빛이 보인다. 젊은 시절군에서 맺은 짧은 만남이 인연이 되어 함께 걸어가는 노경에 동행하는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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