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오늘의 생각

내 친구 영년이

Sam1212 2021. 11. 5. 11:18

홍제동 전철역에 도착해 친구에게 전화했다. 1번 출구로 나와 똑바로 걸어 오라 한다.  역사를 나와 걸어 가는 길에 다른 동네에선 못 보던 풍경이 펼쳐졌다.  입구에서 부터 노점상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오랜만에 줄지어 늘어선 노점상 풍경을 바라보니 사람 사는 냄새 물씬나며 정겹다. 두리번거리며 감귤 연시 사과  제법 큰 과일상들이 모여 있는 노점 앞을 지날 때 마중나온 친구와 만났다. 

 

영년이는 내  국민학교 동창이다. 20년 전 쯤  전에 고향 친구 상갓집 문상을 동행하며 만나고 오늘 처음 본다. 그때 친구가 이곳 홍제동에서 막걸리 장사를 한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나도 직장 생활을 할 때 일요일엔 친구들 함께 북한산 등산을 다니며 홍제동 부근을 지나갈 때도 여러번 있었다고 말하니 부근을 지나게 되면 꼭 전화 하라고 말해 주었다.  그 뒤로 여러해 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수 년 전에 카톡으로 다시 연결되 소식을 나누며 지냈다.

 

카톡으로 언제 만나서 막걸리 한잔 나누자며 말로만 여러번 약속을 나누었다. 오늘 친구들과 일산 쪽 등산을 일찍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다. 영년이와 한 막걸리 한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장한 체격인 친구는 얼굴에 주름 몇개가 늘어났지만 옛 모습 그대로였다. 도로 한 복판  많은 인파 속에서도 쉽게 알아보았다. 반가워 악수를 하며 내민  내 오른손이 영년이의 마디 굵고 거친 손바닦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를 따라 시장통으로 들어가면서 보니 막걸리 박스를 배달하던 중에 내 전화를 받고 마중 나온 모습이다.

 

친구가 이끌려 시장내 노점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몇차례 말로만 오갔던 '막걸리 한잔'이  오늘 드디어 이루어졌다. 귀한 친구가 멀리서 왔다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머릿고기 좋은 부분을 안주로 주문한다. 주고 받는 막걸리 잔에 우정이 넘쳐난다. 술을 잘 못하는 나도 친구의 우정이 넘치는 막걸리 잔을 사양하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부담없고 격의 없는 술자리다.

 

두 70 노인은 60년 전 시골 국민학교 교실과 운동장을 거쳐서 서울의 일상과 요즘 젊은이들의 변한 세태와 나라 일하는 힘쎄고 잘난 사람들을 만나보고서야 막걸리 잔을 내려 놓았다.  

 

내 친구 영년이는 수백명의 내 카톡방 친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국민학교만 졸업했다. 우리 둘이서  나누는 대화 속에는 플라톤이나 칸트  논어와 장자 또는 신자유주의나 베네주엘라 같은 용어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내가 바라본 친구는 세상 돌아가는 원리와 현상에 대해 모자람이 없다. 나보다 더 정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것은 검다하고 흰 것은 분명히 희다고 본대로  말했다.

 

요즘 생활 속에 새로운 불만 하나가 더 생겼다. 톡방에 모여 있는 내 많은 친구들 어떤 이들은 이름 앞에 00박사 00회장 00 대표 00University에서 공부했음이라고 세상에서 얻어 달은 훈장을 붙이고 나오는 이들이 있다.   화려한 훈장을 이름표 위에 붙이고 나오는 이들 중에 흰 것을 희다 검은 것을 검다고 소신 있게 말 못하고 에둘러 말하거나 자신이 과거에 검다고 말했던 것을 오늘은 희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오늘 친구와 막걸리 잔을 주고받으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국민학교 졸업장 말고는 내세울 훈장이 하나도 없으나  세상을 있는 대로 똑바로 바라보고 자신이 보고 느낀 일들에 대해서는 가식 없이 바르게 말했다.

 

오래전에 그와 함께 차를 타고 동행할 때 차 속에서 나에게 들려 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너희들이 중학교 교복 입고 큰길을 걸어갈 때 혹시 라도 마주칠까봐 나는 숨어서 기다렸다 지나가곤 했었다"  

내 좋은 친구 영년이 언제 그가 쉬는 날을 잡아 막걸리 한 잔 더 진하게 해야한다.

(2021.10월.30일  영년이와 막걸리 한잔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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