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북한산 둘레길

가을 햇살은 수림위로 쏟아져 내리고(안골길/산너머길)

Sam1212 2011. 10. 30. 19:31

 

가을 햇살은 수림위로 쏟아져 내리고

 

오늘은 친구와 함께 걷는 길이다. 의정부 회룡역에 약속시간 보다 내가 10분 늦었다. 친구 용환과는 한동네에 살면서 주말 마다 북한산 등반을 10여 년 간 함께 하였기에 그의 자연 사랑이나 등반에 관한 넓은 지식은 익히 알고 있다.

 

 오늘 친구와 특별히 둘레길을 함께 하는 이유는 그의 나무와 야생초에 대한 전문가적 지식을 통해 그간 둘레길을 걸으면서 궁금했던 부분들을 해소하는 의미가 있다.

 

'안골길' '회룡탐방센터'를 올라가는 길가엔 커다란 회화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옆에 서있는 안내판에는 수령이 420년이라 적혀있다.

 

나무 옆을 지나가며 친구에게 회화나무에 대해 물었다.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 콩과나무이며 마을에 이 나무가 있으면 훌륭한 학자가 배출된다하여 느티나무나 팽나무보다 귀히 여겼다 하며 별칭으로 학자수學者樹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친구가 가리키는 가지 끝을 바라보니 정말로 콩 꼬투리 같은 작은 열매가 달려있다. 역시 전문가다운 설명이다. 오늘 하루의 일정이 초반부터 시원하게 풀려나간다.

 

사패산 구간은 새로 생긴 순환도로 때문에 트래킹 코스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안골길 구간도 사패산도로 와 연하여 도로의 둔덕아래를 한참이나 걷게 한다.

 

오늘이 10월3일 아직 산은 아직 초록색이 점령하고 앉아 쉽게 자리를 비켜주려 하지 않는다. 가을의 정취는 산을 온갖 색으로 물들이는 활엽수의 단풍이 장관이지만 언덕위에 하얗게 피어나는 억새는 훨씬 서정적이다.

 

호암사 절 입구를 지나자 언덕위에 이른 억새들이 흰 꽃을 피웠다. 억새꽃 군락지로 가을 단풍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서울은 하늘공원이 억새꽃 축제로 유명하다.

 

내가 길가에 있는 억새풀을 가리키자 옆에 가던 친구가 그건 억새가 아니고 '달뿌리풀'이라 정정을 해준다. 걷기를 하면서 나름대로 억새와 갈대를 구분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지만 '달뿌리풀'이란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친구가 설명해주는 대로 꽃술을 보니 과연 억새와는 다른 모습이다.

 

 

친구는 우스개 이야기 한편을 들려준다. 억새 갈대 달뿌리풀 삼형제가 산위에 살았는데 갈대는 산 밑으로 갈 때 까지 내려가 살아 갈대가 되었고, 달뿌리풀은 경치 좋은 언덕에 자리를 잡고 억새는 억세게 산위에서 버텼다고 한다.

 

 

사패산 도로 아래 통로를 건너가니 직동공원이 나온다. 새로 조성된 신시가지와 근접하고 있어 주민들이 나와서 운동을 하거나 여가를 즐기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띤다.산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직동공원 옆으로는 통나무집들과 놀이터 운동기구들이 마련되어 있고 멋진 조각 작품들도 보이는 것으로 보아 꽤 잘 조성된 근린공원이다.

 

공원길이 끝나는 곳부터 산 능선을 따라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올라가는 길은 군사 시설물들과 함께한다. 작은 일인용 참호에서부터 후사면의 박격포진지와 산 아래를 접근로를 겨냥해 구축된 대형 포진지 옆을 통과한다.

 

 시설물 옹벽에 표시된 글자들의 페인트가 아직 선명한데 교통호 방벽은 무너져 내린 곳이 여러 군데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이런 시설물들을 구축하느라 많은 군인들이 힘든 작업을 하였음을 군에 다녀온 남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가 군 생활할 때에는 한 달 넘게 야전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면서 철조망 설치 작업을 한 기억이 있다. 당시 작업량을 공기 내 끝내려고 군용 메리아스로 횃불을 만들어 어둠을 밝히며 야간작업도 수시로 하였다.

 

당시 병사들의 손은 철조망 가시에 찔려 성한 곳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군용 시설물들을 바라보면서 친구와 오래전에 지나간 군대 생활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후방사단에 배치되어 나만큼 힘든 작업은 없었으나 개인용 참호는 많이 만들어 보았다 한다.

 

 

 

 

능선에서 내려와 안골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우측에 있는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나오고 이곳에서부터 '산너머길' 구간이 시작된다.

 

이곳에서부터 사패산 정상을 바라보며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작은 소나무들이 울창한 오솔길을 힘들게 올라 능선에 다다르면 능선위의 길은 오르락내리락하며 2-3백 미터를 이어져간다.

친구와 나는 길가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가지고온 과일과 떡으로 간단하게 시장기를 때웠다.

 

능선길은 오르락내리락하며 이어져나가다 가파른 절벽 앞에서 나무계단을 올라간다. 20여 미터 이어진 계단을 올라서면 꽤 넓은 마당바위가 나온다. 모두들 이곳에서 지금까지 올라오면서 몰아쉬었던 거친 숨을 배낭을 내려놓고 의정부 시내를 내려다보며 땀을 식힌다.

 

그러나 정작 진짜 전망대는 마당바위에서 50미터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전망대는 커다란 바위 위에 나무 데크를 설치하였는데 쉼터 중앙에는 커다란 소나무와 바위가 회손 되지 않은 채 등산객을 반긴다. 난간에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의정부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우측 사패산 너머로는 수락산 봉우리가 보인다.

 

 

산위에서 내려다본 의정부의 모습은 서울의 외곽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중심가는 물론이고 작은 산봉우리 넘어도 산위로 솟아 오른 고층 아파트들이 빽빽하다. 지금까지 내 기억속의 의정부는 서울의 작은 위성도시로 도심 중앙에는 2,3층 상가 건물들이 밀집해 있었고 산자락마다 군부대의 높은 철조망과 담벼락 그리고 담벼락에 붙어있는 경고문이 입력되어 있었다.

 

전망대에서 의정부 시내를 내려다보며 스케치를 한 장하고 다시 발길을 재촉 하였다. 전망대를 뒤로하고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산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돌아가며 내려오는 길은 활엽수가 욱어진 호젓한 산길이다.

 

걷기를 하면서 제일 걷기매력에 빠져 들어가는 구간은 바로 문명의 잡음으로부터 벗어나 산새들 소리와 이따금 나무 밑을 스쳐가는 바람소리 만 들리는 이런 호젓한 오솔길이다.

 

산길을 덮고 있는 울창한 수림사이로 가을 햇볕이 파고들어온다. 벌써 서쪽 하늘로 건너간 태양은 검푸른 숲속에 포근한 가을햇살을 나무위에 쏟아 부어 햇볕을 받는 나뭇잎들은 연두색으로 밝게 빛나고 몇 가닥의 눈부신 햇살은 길 위에 까지 쏟아져 내리고 있다.

 

몇 굽이를 돌아 나오니 큰길이 나오고 멀리서 질주하는 차량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사패산 순환도로에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제 큰길까지 걸어 나가면 오늘의 일정은 모두 끝난다. 친구의 시계를 들여다보니 3시30분이다. 둘레길에서 조금 떨어진 원각사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원각사로 올라가는 길은 산길을 넓히느라 커다란 포크레인이 길을 막고 공사 중이다. 입구의 작은 계곡은 다리를 새로 건설하느라 개울 밑 커다란 암반을 깨내느라 중장비를 이용해 큰 공사를 벌이고 있다.

 

깊은 산속의 절간이라도 현대 문명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생활하기를 바라진 않는다. 그러나 산사를 찾아 오르는 길은 시원하게 잘 뚫린 도로보다는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소나무 뿌리와 길 위로 튀어나온 돌 뿌리는 수 백 년 넘게 산사를 찾은 참배객의 발걸음에 닳아 반들거리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 훨씬 운치와 정감이 있다.

 

우리의 유명한 산사는 모두 산속 계곡 깊이 자리 잡고 있어 절집을 찾아가려면 큰길 차에서 내려 계곡 물 소리를 들으면서 한참을 걸어서 올라야했다. 불자가 아닌 탐방객에게는 화려한 절집 건물들 보다 절을 찾아 오르는 길에서 속세의 번뇌를 한물 벗어버리는 소중한 경험을 맛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의 유명 고찰들은 큰길에서 계 보통 계곡물길 따라 1,2킬로를 걸어들어간다. 이 길은 단순히 절집의 부처님을 찾아 오르는 길이나 문화재나 보물로 등록된 절집이나 석조물을  보기위해 들어가는 단순 도로가 아니며 자신의 삶에대하여 자문하는 사유의공간이다.  우리의 산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역사문화 유산이고 계속 지키고 보존해야할 보물이다.

 

전에는 8도 어느 골자기의 절집을 찾아가더라도 이런 호젓하고 아름다운 사색의 공간을 쉽게 경험할 수 있었다. 이젠 산속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어 그 싱그러운 공간을 쉽사리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다 절 길을 오를 때면 번쩍이는 승용차에 놀라 길을 비켜주어야 할 때도 있다.

 

 

원각사를 찾았을 때 해는 벌써 서쪽 능선위에 걸려있다. 종루 앞 커다란 바위 위에 작은 돌을 모아 소망 탑을 쌓은 걸 보니 사패산을 오르는 등반객들이 많이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의외로 절은 꽤 한적하고 염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 두 사람 외 에는 한 여인이 커다란 철불 앞에서 막 참배를 끝내고 쉬고 있는 모습만 보일뿐 참배객이나 스님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친구와 나는 절간을 한 바퀴 싱겁게 둘러보고 산을 내려왔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원각사에서 사패산 터널을 공사를 강력하게 반대하였다한다. 큰 길에 내려와서 보니 절 입구로 새로 생긴 도로가 가로질러 지나가고 산자락을 뻥 뚫어 만든 터널의 입구도보였다. 과연 사찰 측에서 터널과 도로공사를 좋아했을 리가 없어 보였다.

 

 

문명의 편리성 효율성이란 개념을 지워버리면,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산자락을 허물어 큰길을 내고 강바닥을 파내고 보를 만드는 일 자연을 크게 파괴하는행위다. 절집에 올라가는 산길을 넓히는 공사 또한 작지만 자연의 훼손이다.

 

 큰 훼손에 삼보일배로 맛서는 스님들이 작은 훼손에도 안타가워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우리의 절집에 그 아름다운 길들이 많이 남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친구덕분에 나무와 야생초에 대한 그간의 의문들을 시원하게 풀어버리고 모처럼 칼국수집을 찾아 이른 저녁을 함께하며 둘레길 나들이를 마쳤다.

 

                                                                                                           

                                                                                                      201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