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북한산 둘레길

가장 재미없는 구간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Sam1212 2011. 10. 14. 14:40

가장 재미없는 구간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북한산 둘레길12(다락원길, 보루길)

 

 

도봉산역에서 내려 자장면으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고 길가 리어카 행상에서 포도 한 송이를 간식용으로 사서 배낭에 넣었다.

 

숲길로 접어들기 전 마지막으로 도봉산을 올려다보니 푸른 가을하늘에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작년 이때쯤 북한산 둘레길 걷기를 시작하면서 '흰 구름 전망대'에서 인수봉위로 피어오르는 구름의 장관을 감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락원길'은 미군부대 담을 끼고 올라가다 다락원 캠프장 정문을 조금 지나 산길로 들어간다. 숲길로 들어서니 탐방객을 처음 맞이하는 것은 '참나무 시들음 병' 이란 안내문이다.

 

 지난주 걸으면서 커다란 참나무들이 벌겋게 시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의아해 했었는데 이제야 실마리가 풀렸다. 수년전 소나무 재선충이 전국으로 번져 산림당국이 방재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대한 적이 있었다.

 

참나무 시들음 병 역시 비슷한 유형의 나무 질병으로 보인다. 매개충이 나무줄기의 껍질을 뚫고 알을 낳으면 그 속에서 번식하여 뿌리에서 물이 올라가는 물관을 막아 나무가 시들어 죽는 병이다. 북한산의 푸른 숲 바다위에 일찍 단풍들은 모습의 갈색 나무들은  모두다 말라죽은 참나무들이다.

 

 

자연은 모든 동식물에게 한 종의 무한 번식을 허용하지 않는다. 환경변화라는 제약과 이따금은 새로운 질병도 준다. 변화에 적응하고 고난을 극복하는 개체에게 한해서 아름다운 지구라는 행성위에서 살아갈 권리를 부여한다.

 

둘레길은 미군 부대의 뒷담을 산길로 한 바퀴 돌아 내려가는 코스다. 산길을 내려서니 육중한 고가도로가 머리위로 지나간다. 얼마 전 새로 뚫린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 구간이다.

 

 서울 외곽 순환도로의 사패산 터널 공사는 자연환경 보호와 효율적인 개발이란 상반되는 명분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오랫동안 논쟁과 투쟁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두 명분 모두가 누가 절대로 옳고 절대로 그르다 할 수 없다, 우리가 찾아야할 답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조화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취하느냐의 문제다.

 

현대 건축물인 고가도로 교각과 상판 아래로 보이는 도봉산 암봉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림을 한 장 그렸다. 도봉산의 수려한 경관이 최신의 현대건축물이 만들어낸 공간의 프레임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웃고 있다.

 

고가도로 아래를 건너면서 둘레길은 산자락에서 멀리 벋어나 도심 속으로 이어진다.

 

이제 막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도심 외곽의 한적한 동네길이다. 이곳도 한때는 사패산 자락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산자락을 야금야금 파먹으며 들어온 건축물들이 보인다.

 

 이제는 산도 보이지 않고 주변에는 눈요기할 만한 곳도 보이지 않으며 2킬로 정도의 재미없는 길이 지루하게 이어 진다.

 

지금 까지 걸어본 구간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구간이다. 주택가에서 빠져나와 다시 언덕을 오르니 사패산 고가도로를 다시 만나면서 길은 숲속으로 들어간다.

 

잘 포장된 언덕길을 조금 올라가니 우측 숲 속에 '덕천사'라고 쓰인 작은 절이나온다. 고찰 느낌이 안 들어 그냥 지나쳐버렸다. 몇 발작 더 걸어 올라가니 '대원사'라고 커다란 현판이 붙은 절이 나왔다. 길 위에서 절집 안을 훔쳐보니 이곳도 새로 지은 절집이다.

 

 그러나 호박돌을 이용 담을 쌓고 기와 올린 담장과 경내의 노송들이 잘 어울린다. 담장에 기대어 그림 한 장으로 담아오는 걸로 만족했다.

 

 

산길을 오르는데 등산객 한분이 커다란 비닐봉투에 쓰레기를 주워 담으며 내려온다. 반갑게 큰소리로 인사를 건넸더니 웃으며 내려가신다. 이런 분들은 산행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반가운 사람이다.

 

원각사 입구서부터는 '보루길'이란 이름으로 산길이 이어진다. 몇 시간 힘들게 걸었더니 출출한 생각이 들었다. 마침 개울물이 흐르는 곳에 벤치가 있어 배낭을 내려놓고 간식으로 사가지고 온 떡과 포도를 먹었다.

 

 길 아래에서 두 남자가 등산복 차림으로 올라오고있었다. 한사람이 커다란 비닐봉투에 길가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 담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앉은 벤치 앞을 지나갈 때 포도를 쌓았던 종이를 건네주었더니 기꺼이 비닐 봉투에 집어넣고 산길을 오른다.

 

 산행을 하면서 오늘처럼 멋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보기는 처음이다. 가끔 남이 버린 쓰레기를 주워 담아 가지고 내려오는 분들을 만날 때 마다 작은 감동을 느끼곤 하는데 오늘 이곳 의정부 구간에선 30분 만에 두 사람이나 만났다.

 

 힘든 구간 기분 좋은 마음으로 즐겁게 걸으라고 하늘에서 내려 주신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일을 남이 모르게 또는 기꺼이 봉사하는 일이 얼마나 스스로에게 행복과 자부심을 가져다주는지는 해본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감정이다.

 

 

둘레길은 오르락내리락하며 이어져 나가다 외곽순환도로의 사패산 터널 입구와 다시 마주친다. 보루길이라 부르는 이 길은 이따금 군사시설 표지가 붙어있는 철조망 옆을 지나가기도 하고 산속의 군사용 포장도로를 따라가기도 한다.

 

'원심사'라는 작은 절을 지나서부터 길은 가파르게 산 능선으로 올라간다. 여기서부터는 걷기전용 둘레길이라 부르기엔 어울리지 않는 등산로다.

 

 모두 합쳐 200개가 넘어 보이는 급경사의 돌계단을 힘겹게 오르니 '사패산3보루'라는 유적지 소개 안내판이 나온다. 얼마나 힘들게 올라왔던지 '108계단'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보루란 용어는 서울의 아차산 길을 걷다보면 자주 만난다. 이곳도 고구려의 석축 보루성터다. 삼국시대 남쪽으로 마주보는 수락산과 중랑천의 교통을 통제하는 군사 요충지였다는 설명이 되어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교통 통제의 요지며 전망이 좋은 장소는 군사 요충지다. 능선 정상엔 커다란 군용 벙커가 자리 잡고 있다. 시설 규모로 보아 지하에 1개 소대병력이 주둔할만한 규모다.

 

 

군용 벙커를 지나서 내려오는 길은 더욱 험하다. 조심조심 산길을 내려오는데 좌측 멀리 계곡 안에 절집이 보인다. 이쯤에서 전망대 하나쯤 나오길 기대했는데 못내 기대를 저버렸다.

 

 지금까지 둘레길을 걸으며 각 구간마다 주제가 있고 구간에 붙여진 이름에 걸 맞는 볼거리가 있었다. 이곳 보루길 구간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볼거리의 즐거움도 찾아보기 힘들고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너무 힘든 구간이다.

 

 

가파른 경사엔 나무 계단이든지 최소한 밧줄이라도 하나쯤 걸어놓았으면 좋으련만 이곳은 전혀 손대지 않은 산길을 둘레길로 사용하고 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산을 내려오는데 뒤따라 내려오던 나이든 여자 2명이 우리처럼 투덜대며 앞질러 내려간다.

 

 산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의 쯤이야!'하지만은 걷기전용 둘레길은 다리가 조금 불편하거나 연로한 분들에게 도 충분히 도전하면서 걷기의 즐거움을 맛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추어야한다는 생각이다.

 

 

산길을 다 내려오니 외곽순환도로 교각아래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가 나왔고 산위에서 바라다본 사찰의 이름이 '회룡사'임을 알았다.

 

2011.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