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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산성에 올라 승리의 함성을 듣다)

행주산성은 월드컵 공원에서 출발해서 한강변을 따라 걸어서 찾아가는 길이 좋다. 산성 가는 길에 야영장과 주차장 운동장들이 있었던 지역을 2009년에 새로 단장하여 '난지 한강공원'이란 이름으로 화려하게 다시 태어났다. 모든 도로는 말끔히 포장되었고 요트 계류장, 자전거공원, 물놀이장과 같은 새로운 시설들도 많이 들어섰다. 새로 단장하기 전에 난지도에서 행주산성 가는 길은 지금같이 잘 다듬어지지 않은 조금은 황량한 느낌이 드는 길이었다. 한강변을 따라 꽤 넓은 둔치엔 잡초가 욱어지고 강물이 느린 지역은 작은 모래톱도 구경할 수 있었던 한적한 곳이었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잘 가꾸어진 공원보다는 좀 거칠고 황량하더라도 인공 구조물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야생의 초원길을 걸어가는 것이 훨씬 더 기분 좋을 때가 있..

아카시아 꽃

오늘 아침 성내천 둑방 산책길에서  하얗게 꽃망울을 터트린 아카시아꽃을 만났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카시아 싱그런 향이 코에 스민다. 아카시아는 외국 이름표를 붙이고 있으나, 우리나라 전국 어디를 가도 산과 들에서 쉽게 마주하는 나무다. 60년대 산림녹화 사업으로 전국적으로 식재를 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번식력도 강해 전국의 야산과 공터를 뒤덮었다. 아카시아는 목재로 쓰기엔 재질이 안좋아 요즘들어 홀대받는 수종이 되었다. 그러나 봄철에 피는 꽃 만큼은 양봉업자의 귀한 밀원이 되고 그 향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5월이 되어 아카시아 꽃을 바라볼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의 추억에 빠져들곤 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1970~80 년대 서울 사당동 집에서 10년 정도 살았다..

오르다온

봄 산에 올라 산들이 파도치며 달려온다 봄 기운이 파도에 실려온다 달려오는 봄바람을 향해 가슴을 펴고 생명의 기운을 흠뻑 들이마셨다. (2021.2.27) "인디언 제비꽃이 한창 피어나는 3월말경이 되면, 우리는 자주 산에 들어가 꽃도 따고 열매도 줍곤 했다. 그러다보면 차갑고 매섭께만 느껴지던 바람이 어쩌다 잠깐 달라지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깃털처럼 부드럽게 볼을 만지작거리다 지나가는 그 바람엔 흙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 바람은 저 멀리서 봄이 오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려주는 전령 이었다." (포리스트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終日看山不厭山 買山終待老山間 山花落盡山長在 山水空流山自閑 종일토록 산을 봐도 산이 싫지않아 산을 사서 산 속에서 늙어나볼까? 산 꽃 다 져도 산은 그냥 그대로 산골물..

50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시골에서 할아버지가 올라오셨다. 오랜만에 상경하신 할아버지를 모시고 시내 구경을 나갔었다. 남대문에서 광화문 까지 돌아보았던 걸로 기억된다. 당시 나라 경제가 잠에서 깨어나 고도 성장기로 들어서고 있었다. 서울 시내 곳 곳에 지하도와 육교 같은 건설 사업이 벌어지고 20층이 넘는 고층 빌딩도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 할 때였다. 광화문 에 도착해 중앙청 우측에 신축된 정부종합청사를 둘러보았다. 당시 부근에서 가장 높은 20층을 훨씬 넘긴 현대식 빌딩으로 아직 입주는 안된 상태였다. 청사빌딩 뒷편에서 할아버지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다가가니 할아버지가 앞에 있는 기와집을 바라보며 조금은 감격한 분위기로 기와집을 가리키면서 "저 집이 내 학교다닐 때 하숙집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청사 뒷..

기념품

전역 기념물을 선물하다 기념물이나 기념품이란 어떤 물건이나 상징물에 의미를 부여하여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우리시대 군대 생활을 한 이들은 기념물을 만들어 가지고 나오는 것이 한창 유행이었다. 전방의 병사들은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탄피를 잘라 반지를 만들어 끼고 나가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조금 여유있는 병사들은 나무 조각품으로 제대 기념물을 만들기도한다. 내가 근무하던 철책선 동부 산악지대 장교들 사이에선 피나무 바둑판을 만들어 기념물로 가지고 가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이런 마음은 2~3년간 첩첩산중에서 문명 세계와 완전 단절된 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들게된다. 군인 아니면 감히 와볼 수 없는곳, 전역 후에도 다시와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나만의 추..